100년만에 광화문 월대와 현판 다시 공개되었다. (+광화문 월대 복원 가치, 광화문 현장 사진, 월대 사진, 현판 전 후 비교, 광화문 월대란?)

100년만에 광화문 월대와 현판 다시 공개되었다. (+광화문 현장 사진, 월대 사진, 현판 전 후 비교, 광화문 월대란?)

100년만에 광화문 월대와 현판 다시 공개되었다. (+광화문 현장 사진, 월대 사진, 현판 전 후 비교, 광화문 월대란?)

100년만에 광화문 월대와 현판 다시 공개되었다. (+광화문 현장 사진, 월대 사진, 현판 전 후 비교, 광화문 월대란?)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 가슴 벅찬 소식이 있었는데요,

바로 광화문 월대가 100년만에 마침내 복원이 되었다는 소식인데요,

1866년에 경복궁 중건과 함께 조성되었던 월대가 1923년에 철거되었었는데 이번 복원 작업은

특히 그 직전의 모습으로 월대를 되살리는 프로젝트였다고 하는데요,

오늘 저녁 광화문 월대와 현판이 공개된 후 개문 의식인 월대 행진과, 다양한 영상과 공연, 프로젝션 맵핑이 이어지면서

축하공연이 이어졌었는데, 본 내용에 대해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광화문 월대 100년만에 복원, 광화문 월대에 대해서

오늘 10월 15일 오후 광화문 앞 광장에서 광화문 월대 및 현판 복원 행사가 진행되었는데요,

이는 100년만에 복원된 광화문 월대의 모습으로 검은색 바탕에 금빛 글씨로 쓰인 광화문이라고 적힌 현판도 공개가 되었습니다.

특히 월대는 익숙치 않은 단어일텐데요, 월대는 궁궐 정전과 같이 중요한 건물에 넓찍히 설치한 대로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왕과 백성이 소통하는 장소로 쓰였다고 알려진 곳으로

궁궐 전문에 난간석을 두르고 기단을 쌓는 경우는 광화문 월대가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광화문 월대 복원 가치에 대해서 알아보기

월대는 말씀드린대로 궁궐 주요 건물에 설치하는, 말 그대로의 넓은 대를 나타내는데요

달을 바라보기 좋은 장소를 뜻하는 월견대라는 것에서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전해지며,

궁궐과 바깥 세계를 연결하는 가교로서 소통의 장이 되기도 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요,

다른 궁궐인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과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 앞에도 월대가 있었으나 위에 말씀드렸듯이

광화문의 월대는 동서 방향으로 화려하게 난간석을 두른 유일한 월대여서 그 규모가 다른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

  • 아래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광화문 월대 그림과, 1890년대 경 광화문 앞 월대의 모습입니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 전차 철로 설치로 훼손된 뒤 도로로 사용되었던 월대

월대는 1920년대 일제강점기 전차 철로 설치 등으로 훼손된 뒤 도로로 사용되어 왔었는데요,

지난해 9월부터 지난 4월까지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집중발굴 작업을 벌여 일제강점기 때 훼철된 옛터를 드러냈고,

남북으로 48.7m, 동서로 29.7m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었습니다.

광화문 월대 100년만에 마침내 복원

위에 말씀드린 훼철된 월대를 그런 복원작업을 통해 드디어 100년만에 복원을 한 것인데요,

이번 복원은 그 직전의 모습으로 월대를 되살린 것이며 한가운데 난 ‘임금의 길’ 어도의 너비는 7m에 달하며,

어도 앞부분 끝에 상서로운 동물의 조각상 서수상 2점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서수상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수집한 작품으로

삼성가 유족이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기존 광화문 옆에 있던 해태(해치)상도 복원된 월대 앞으로 자리를 옮긴 상황입니다!

광화문 새로운 현판도 함께 공개되었다. (+광화문 의미, 현판 제작 논란)

특히 이날 함께 공개된 새 현판은 고종 때 경복궁 중건 당시 훈련대장 임태영이 한자로 쓴 글씨를

검은색 바탕에 금빛 글자로 새긴 현판으로 알려졌는데요,

“왕의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뜻을 가진 광화문 현판은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흥선대원군 때 다시 지어졌고 이후

일제와 전쟁을 거치며 훼손되었었는데, 2010년 광화문이 현재 자리로 옮기며 현판을 새로 만들었지만

복원 석 달 만에 갈라져 부실 복원 논란을 빚은 바 있었습니다.

  • 아래는 기존 광화문 현판과 현재의 현판 비교 사진입니다. 😊

또 뿐만아니라 이번 제작 과정에서도 글씨 색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요, 😐

당초 문화재청은 기존 흰 바탕에 검은 색 글씨로 현판을 재재작할 계획이었지만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이 소장한

1893년 사진 자료, 경복궁 중건 당시 기록 ‘영건일기’ 등에서 검은 바탕에 금색 글씨였다는 근거들이 나오며

이를 바탕으로 복원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나무에 글씨를 조각한 뒤 동판을 글자 모양대로 잘라 붙이고 금박을 입히는 방식으로 복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광화문 월대 복원의 현대적인 의미

광화문 월대 복원은 그저 옛 왕조의 흔적을 되살리는 작업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근대의 상처를 만나고 보듬는 과정, 상처를 제대로 기억·치유하는 과정이라고도 전해졌는데요,

따라서 광화문 월대의 존재 의미는 더 진취적이어야 할 것이며 단순 공간 복원이 아닌

창의적인 공간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은 상황입니다.

맺으며

월대와 현판이 공개된 후에는 광화문 개문 의식 ‘새길맞이단’과 광화문 월대 행진, 다양한 영상과 공연, 프로젝션 맵핑이 이어지면서

각종 축하 공연이 이루어졌는데요. 시민들 역시 이제 복원된 월대에서 달을 보게 될 것인데요.

다른 교수나 학자들이 이야기하는바와 같이 복원된 본 월대를 활용하여 단순 복원을 넘어서

보다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공간활용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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